오늘, 현장소장 임명식과 우수 제안자 표창 수여식이 있었습니다.
오늘, 현장소장 임명식과 우수 제안자 표창 수여식이 있었습니다. 현장 직원들의 가장 큰 목표가 현장소장일 텐데, 최근 현장이 늘어나며 일도 많고 기회도 많은 시절인 것 같습니다. 회사는 내부 우수인력을 현장소장으로 발탁하거나 외부에서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기술 영역에 대한 경험을 가지신 분들을 영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지식경영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좋은 평가를 받은 주니어 직원 다섯 분에게 표창했습니다. 항상 이렇게 끊임없이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지식경영에 참여해 주시는 임직원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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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3 국가의 지정학적 스토리
※ 국제정세를 바라보는 다양한 방법론 중 지정학적인 관점을 소개하기 위한 것으로, 아래에 언급된 구체적인 사건 및 시대별 특성은 실제와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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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도와 함께 Big3 국가의 지정학적 스토리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항상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회사의 책임자로서 결정하고 고민하며 미래에 대해 준비할 때 우리 회사를 둘러싸고 있는 생태계, 더 나아가서 우리 국가 경제와 세계 경제가 어떻게 변할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공부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일과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그냥 주어진 일만 해서는 특별한 인상을 주거나 성장할 수 없습니다. 공부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바꾸려고 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지정학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지정학(geopolitics)은 땅의 이치를 밝히는 학문인 지리학(geography)과 정치를 연구하는 정치학(politics)이 합쳐진 단어로, 지역/자연과 경제/문화의 관계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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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이야기하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있어서 우크라이나가 유럽과 러시아의 관계 혹은 미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냉전 체제에서 지정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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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러시아는 우랄산맥 서쪽에 머물렀습니다. 러시아의 뿌리는 모스크바 공국으로 우랄산맥 서쪽을 기반으로 합니다. 우랄산맥 동쪽, 시베리아 지역은 기후도 춥고, 농업생산력도 낮으므로 중국도 진출하지 않은 지역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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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대공국 (Великое Княжество Московское) _ 14~16세기 동유럽에 성립한 대규모 키예프 루스 연방 제후 국가. 16세기 중엽에 이반 4세에 의해 모스크바 대공국이 아닌 차르국 러시아로 발전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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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유럽,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봤을 때 이 지역은 촌 중의 촌 동네였죠. 문화뿐만 아니라 생산시설들도 낙후해 서유럽에서는 무시당했습니다. 하지만 서유럽이 대규모 전쟁에 휘말릴 때, 러시아의 계몽 군주들이 나타나 힘을 키웠고, 거의 저항 없이 시베리아에 진출했습니다.
러시아가 서유럽처럼 식민지도 만들고 해양으로 진출도 꾀했을 때, 러시아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항구인 상트페테르부르크(Санкт Петербург)가 발전합니다. 러시아의 숙원은 대양으로의 진출인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대서양으로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겨울에는 바다가 언다는 것입니다.
러시아는 대양으로 진출을 위해 부동항을 가져야 했고, 이것은 러시아의 미래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러시아는 청나라와 갈등을 겪으면서까지 시베리아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부동항인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를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블라디보스토크도 겨울에는 좀 얼기 때문에 확실한 부동항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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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 시절, 그들에게 확실한 부동항은 우크라이나의 세바스토폴(Севастополь)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대양으로 나가려고 해도 흑해, 지중해와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야 해서 힘들기는 했습니다. 오늘날 러시아가 전 세계의 비난을 들으면서도 우크라이나, 특히 세바스토폴이 있는 크림반도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략을 준비하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키예프 루스라는 12세기 국가에 뿌리를 둔 형제국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로서는 ‘한국은 중국 땅이었다’라고 말한 것과 같이 황당한 말이었습니다. 같은 종교, 같은 범슬라브 계통 등 많은 것을 공유하기는 했지만, 확실히 다른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키예프 루스는 한동안 번영하다가 몽골의 침략으로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처럼 초토화됐고 북쪽에 있던 모스크바 공국은 이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용히 국가체제와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면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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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미국의 반복되는 총기 사고를 지정학적으로 보는 이야기입니다.
우선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훨씬 이전에 노르웨이의 바이킹족들이 그린란드를 거쳐 캐나다까지 갔다는 고고학적 증가가 있습니다. 콜럼버스는 1492년에 아메리카, 지금의 쿠바를 처음 발견했습니다. 지금은 이 지역을 서인도 제도(West Indies)라고 부르는데, 콜럼버스가 이곳을 인도의 서쪽이라고 오인했기 때문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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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지도를 보시면 서쪽에는 사막과 험준한 산맥이 있습니다. 동쪽으로 갈수록 비옥하고 비교적 낮은 지역입니다. 위쪽으로는 거대한 다섯 개의 호수, 오대호가 있고요.
미국의 건국은 애팔래치아 산맥 동쪽에 있던 13개의 식민 주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국토 면적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지역이 독립선언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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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전에는 13개의 식민 주들도 애팔래치아 산맥 서쪽으로 진출하지 않았습니다. 그쪽은 인디언들의 땅이었죠. 콜럼버스가 왔을 때 인디언들의 인구가 최소 100~300만은 됐다고 합니다. 이주민들이 이 땅을 점유하는 방법은 인디언들에게 이 땅을 사거나 싸워서 쫓아내는 것인데, 이들과의 전투, 갈등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영국 정부도 막았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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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막았던 영국 정부에게서 독립하자 서쪽으로의 진출이 더욱 가속화됩니다. 미시시피강 동쪽 지역은 영국으로부터 할양 받고, 미시시피강 서쪽 지역도 프랑스로부터 사들입니다. 당시 프랑스가 나폴레옹 시절의 격변기였기 때문에 미국 땅 관리가 어려웠고, 미국이 영국 편을 들지 않도록 중립국화시킬 필요도 있었기 때문에 판매했던 것이죠. 스페인 영토였던 플로리다도 미국이 구매합니다. 이렇게 1800년대를 갓 넘기면서 미국의 국토가 엄청나게 확장됩니다. |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도 원래 멕시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이주민들이 마음대로 여기에 살면서 세력을 형성하고 멕시코로부터 독립을 선언해버립니다. 그리고 미국 연방으로 들어가게 되죠. 나중에 하와이도 이런 식으로 확장하게 됩니다.
계속 확장한 미국의 이러한 역사를 이해해야 미국의 특이한 선거 제도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힐러리나 고어가 전체적으로 표는 더 많이 받았지만 승리한 주가 적었기 때문에(주에서 승리하면 그 주의 표를 모두 가져감) 대통령 선거에서 졌죠. 미국이란 나라가 중국이나 러시아처럼 중앙 정부의 힘이 엄청난 나라가 아닙니다. 의외로 각 주의 독립성이 매우 강한 나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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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13개 주에는 영국 사람들만 살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노르웨이, 네덜란드 사람들도 꽤 많았습니다. 돈을 받고 상업적으로 이주를 한 곳은 버지니아주가 처음이었습니다. 버지니아 주식회사가 영국 왕에게 이민 대행 및 영토 개발권을 받고 영국 사람들에게 대서양을 건너가면 공짜로 농경지를 가질 수 있다고 광고했습니다.
그리고 매사추세츠에는 영국성공회의 박해를 피해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가 이주했습니다. 담배 농사를 짓기 위해 원주민들의 땅을 뺏은 남부 식민지의 스토리보다 미국 건국의 뿌리가 된 개신교도들의 개척정신과 같은 스토리가 더욱더 매력적이기 때문에 필그림 파더스가 더욱 많이 이야기됩니다.
뉴잉글랜드는 영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정착했고, 남부는 플랜테이션 농업, 특히 담배 농업이 중심이었으며, 중부 식민지는 네덜란드, 노르웨이 사람들이 정착해서 밀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러다가 영국 정부의 무역 차별이 너무 심해지자 이 13개 주가 독립선언을 한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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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근래에도 총기 사고가 어마어마합니다.
왜 개인이 총기를 갖는 것을 막지 못할까요? 아니면 스위스처럼 강력한 규제로 통제하지 못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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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미국의 군수 사업, 총기 사업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그만큼 로비도 강력합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미국은 건국 이후,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할 때 국가 행정력, 경찰력은 그만큼 확장되지 못했습니다. 미국 개척민들이 신세계로 들어갈 때 믿을 것은 자기와 자기의 총뿐이었습니다. 미국의 주로 편입되기 전, 텍사스는 멕시코의 영토였기 때문에 미국 연방의 군대나 경찰들이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
서부 개척 시대에 나를 지키는 것은 나의 힘 또는 민병대였고 그중 똑똑하고 총 잘 쏘는 사람을 보안관으로 임명했습니다. 보안관은 공무원이 아니죠. 지금도 미국의 시골에 가면 지역의 세습 보안관이 있는 곳이 있습니다. 보안관들은 지역민들이 월급도 주고 선발도 합니다. 프런티어에 있던 개척민들에게 총은 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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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관 (Sheriff) _ 큰 행정 구역인 카운티(county)의 치안을 담당하는 조직. 치안이 부재했던 서부시대 같은 경우, 보안관은 지역 유지 가운데 쓸만한 사람을 뽑아서 쓰거나 심지어 총 좀 잘 쏘는 카우보이들을 선출해서 맡기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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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중국 이야기입니다.
지도를 보시면 중국의 동남부는 초록색으로 비교적 비옥하고 북쪽의 고비 사막, 서쪽에는 타클라마칸 사막, 서남쪽으로는 티베트가 있습니다. 중국이 국제적으로 항상 비난받는 티베트에 대한 강제적인 병합은 1959년도에 일어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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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서쪽에 있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티베트 자치구, 칭하이 성은 험준하고 농업생산력이 떨어지는 지역이지만 호전적인 민족들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에 굉장히 골치 아픈 지역이었습니다. 중국이 강성할 때는 이 지역을 차지했지만, 전통적으로 이 지역은 중국의 세력권 밖에 있던 지역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이 승전국의 입장에서 국가 경계를 만들 때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칭하이 성은 영토로 인정됐지만, 티베트 지역은 아니었습니다. 이에 중국공산당이 티베트로 강제 병합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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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에서 황하강과 양쯔강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림에서 보듯이 두 강의 발원지는 모두 티베트입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젖줄인 메콩강의 발원지도 티베트입니다. 즉 중국이 국내외의 수자원을 장악하는데 절대적으로 티베트가 필요한 것입니다. 티베트가 반중국 영향력을 행사하면 양쯔강, 황하강의 농업생산력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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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이 지정학적으로 일으키는 문제는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입니다. 필리핀, 베트남, 일본 등과 출동하고 있죠. 기존의 질서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기득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입니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면서 30~40년간 굉장한 경제성장을 이뤘습니다. 세계의 공장이 됐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수출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중국 입장에서 보면, 한국에서 출발해, 일본(오키나와), 대만,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장벽이 존재합니다. 태평양으로 나가려면 이들에 막혀있는 상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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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대만과의) 군사적 충돌을 감행할 생각도 있지만, 미국 측의 경제 제재 및 해상봉쇄 정책에는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의 약점이죠. 그 때문에 아직은 애매한 태평양 지역과 관계를 맺고 해군기지를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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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푸틴의 지지율은 80~90%로 매우 높습니다.
러시아 국민이 독재자에게 세뇌당하고 통제당해서 그럴까요?
세계의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는 미국이란 존재가 형성 시기에는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맞는 나라였을까요? 건국 과정에서 희생된 수백만의 인디언들과 파나마운하를 차지하기 위해 쿠데타를 뒤에서 지원했던 미국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반중 정서가 강한데, 중국 입장에서는 티베트란 지역은 지역의 수자원을 보호하거나 역사적으로 침략당했던 적이 많은 서쪽에 자연적 장벽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또한 중국이 존립하고 교역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일본의 정치적인 입장으로부터 자유롭게 남중국해로 오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마지막으로 정치학에 ‘안보 딜레마’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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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국방에 투자한다면, 그 나라와 긴장 관계에 있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위협이 되고 입지를 약화하는 것이 됩니다. 결국 상대방 나라도 군비경쟁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지속되다가 아차 하면 핵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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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대한 투자로 가야 할 비용이 소모성이 큰 국방비에 쓰이고 오히려 국민의 삶을 어렵게 합니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 실제로 벌어진 경쟁이죠.
우리 구성원들에게 세상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편적이지 않다는 것, 일방적인 입장에서 어떤 사건이나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 길게 이야기했습니다. 모두 스토리가 있고 자기 배경이 있습니다. 우리 회사가 헤쳐가야 할 여러 가지 상황, 우리 임직원들이 삶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에도 내가 모르는 사건과 스토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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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의 미션에 ‘사람, 자연, 역사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공간을 창조한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자연이라는 것은 지리에 의해서 어느 지역이 더 번성하느냐 못하느냐는 것이고, 역사라는 것은 시간의 축적이죠. 즉, 러시아와 미국의 현재를 판단할 때 100년, 200년 동안의 시간의 축적 속에서 보지 않으면 단편적인 부분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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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중국과 미국이라는 엄청난 국제적인 세력 사이에서 나름의 국가전략을 잘 조율하기를 정치인들에게 바라지만 우리 국민이 그러한 안목을 갖추고 있을 때만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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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지리의 힘 1·2 (팀 마샬 저) _ 중국, 미국, 서유럽, 러시아, 한국과 일본,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중동, 인도와 파키스탄, 북극 등 전 세계를 10개의 지역으로 나눠 ‘지리의 힘’이 21세기 현대사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적으로 파헤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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